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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 '30대 돌풍' 한인들] "Yes, I can" 도전정신…미 선거 새 페러다임 열었다

초반 개표결과 제인 김이 경쟁 후보들을 상당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곧 분위기를 띄우는 댄스 음악이 터졌다. 제인 김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와 음악에 맞춰 춤 실력을 뽐내자 선거 캠프는 순식간에 파티장으로 바뀌었다. 현역 시의원이 연임 제한 규정에 걸려 선거에서 빠진 샌프란시스코 6지구에선 제인 김을 비롯해 14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한 후보의 득표율이 50%를 넘을 때까지 1순위, 2순위, 3순위 선택을 차례로 집계하는 샌프란시스코 선거규정에 따라 8일이 되서야 제인 김은 시의원 당선이 확정됐다. "15분 밖에 시간이 안나요."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 제인 김과의 전화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당선 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낮 시간은 주로 '교육위원 미팅중' '회의 참석중'이라는 문자 메세지가 돌아왔다. 15분씩 여러 번 짧막한 통화와 문자,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 선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바쁜 것 같다. "내년 1월8일 시의원으로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교육위원회 의장으로서 활동이 계속 있다. 다행히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데 익숙하다." 뉴욕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제인 김은 4억3000만 달러의 예산을 관장하는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 의장이다. 2006년 최연소(당시 29살), 최다 득표로 시 교육위원에 당선됐다. 무난한 당선은 아니었다. 2004년 27살 나이에 도전한 교육위원 선거에서 이미 한 차례 낙선을 경험했다. - 처음 교육위원 선거에서는 당선되지 못했다. 또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었나. "당시는 선거 경험이 없었다.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패를 많이 한다. 그 때도 실망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도전을 즐긴다. 결국 2년 뒤 다시 도전해 당선됐고 그 때의 경험이 이번 선거 승리의 기반이 됐다." - 이번 선거에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샌프란시스코 지역 민주당, 노조, 진보단체, 상공회의소 등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내가 교육위원으로서 독립적으로 활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대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뛰었다. 발로 뛰면서 유권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났다." 제인 김이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선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4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20~30대가 주를 이룬 자원봉사자들은 선거구 내 유권자들의 성별, 연령별 정치성향을 정밀 분석해 선거전략을 세우고 한 명, 한 명을 만나며 풀뿌리 선거운동을 펼쳤다. 한인 2세 네트워크도 가동됐다. 2009년 보스턴 시장에 도전했던 샘 윤, 뉴욕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케빈 김, PJ 김 등이 후원행사를 개최하며 제인 김을 도왔다. 선거 홈페이지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3종세트가 나란히 제인 김의 열정과 활기를 전달했다. 지역 언론들도 제인 김의 선거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주간지 SF위클리는 제인 김을 '젊고, 똑똑하고, 매력적이며 말을 잘한다. 더구나 아시아계다'라고 평했다. SF위클리는 선거를 앞두고 '아시아계'라는 정체성 카드가 제인 김을 시의원에 당선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 아시아계 정치인에 대한 편견이나 한계는 못느꼈나.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리더십이 부족하고 소극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계가 강하다. 아시아계를 존경(respect)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인이라는 것, 아시아계라는 점은 나에게 있어 한계(limitation)가 아니고 자산(asset)이다." - 지역구에는 한인 유권자가 많지 않다. "한인 유권자는 200여명에 불과하다. 한인 유권자는 중요하다. 하지만 한인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오랜기간 지역에서 봉사하면서 타 커뮤니티와도 연합(coalition)을 맺었다. 샌프란시스코 내의 중국계 커뮤니티 뿐 아니라 필리핀, 라티노, 베트남, 흑인 등 다른 소수계 커뮤니티와 동일한 관심사를 찾는데 주력했다. 함께 가자고 했다. 소통이 중요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치적 파워가 커지고 있는 중국계는 특히 제인 김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중국계는 정치 지도자들은 '나를 지원하는 중국계는 이번 선거에서 제인 김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제인 김은 2000년 차이나타운 지역개발 센터(CCDC)의 청소년 담당으로 활동하며 중국계와 네트워크를 쌓았다. - 미국에 사는 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봤나.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뉴욕은 한인이 많지 않았다. 유대인, 이탈리안 등 다양한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중요성을 배웠다. 아버지는 늘 한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하셨다. 태권도를 배워 검은 띠를 받았고 연세대에서 한국사와 외교문제도 강의를 들었다. 한국도 8번 정도 방문해 이제는 고향같다." 에피소드 #1 UC버클리 법대를 졸업한 제인 김은 지난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할아버지 김종수 서울지검 검사장, 아버지 김광호 뉴욕 퀸즈 검찰청 검사에 이어 3대 법조인이 됐다. 가족은 제인이 연봉 25만 달러를 제시한 대형로펌을 갈 줄 알았다고 한다. 제인 김은 대신 민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아버지 김광호씨는 "가훈이 '수신제가 인류복지'(치국평천하 대신)다. 가훈을 따라서인지 딸이 어렸을 때 부터 지역 봉사활동과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에피소드 #2 독특한 선거 전략도 제인 김의 승리요인이다. 제인 김은 길거리를 걸으며 단순히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대신 눈에 잘보이는 빨간색으로 칠한 '리스닝 부스'(Listening Booth)를 운영했다. 제인 김의 선거 홍보책임자인 서니 앵글로씨는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제인 김의 선거 메세지를 반영할 수 있는 홍보수단이 필요했다. 독특하고 대담한 방법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리스닝 부스는 스누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만화 '피너츠(Peanuts)'에 여자 주인공 '루시'가 찰리 브라운의 고민을 상담했던 '부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제인 김의 야외 오피스를 상징했다. 제인 김은 1시간 정도를 '리스닝 부스'에서 근무하며 유권자들과 소통했다. 에피소드 #3 스탠포드대서 정치학과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학을 전공한 제인 김은 재학중 아시안-아메리칸 학생회 회장도 역임했다. 당연히 한인 학생들을 많이 알 것 같았다. 권율 연방통신위원회(FCC) 부국장이 1년 선배며 친하게 지냈다는 답이 나왔다. 최근 학력위조 논란이 됐던 '타블로'도 알고 지냈다고 한다.

2010-11-14

[중간선거 '30대 돌풍' 한인들] "I am Korean" 소수계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

2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선 한인 정치인들의 돌풍이 거셌다. 역대 선거사상 가장 많은 18명의 한인 정치인들이 배출됐다. 특히 정계에 도전장을 내민 30대의 젊은 한인 2세들은 미국 선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내 소수계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계'가 아닌 '장점'으로 승화시켜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당선된 제인 김(33·여)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훈영 합굿(36·한국명 정훈영) 미시간주 주 상원의원(민주당), BJ 박(37·한국명 박병진) 조지아주 주 하원의원(공화당)은 30대 한인 정치인 그룹의 선두주자다. 이들은 출신지역, 성장배경, 정치성향이 모두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한인 유권자가 많지 않은 곳을 지역구로 선택했지만 한인임을 자랑스럽게 밝히며 선거운동을 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유권자들의 표심을 모았다. ■훈영 합굿 미시간 주 상원의원 2살때 입양…양아버지가 정치인 "이젠 이름·생김새 중요하지 않아" "내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4살쯤 돼서 안 것 같다. 거울을 보면 난 엄마, 아빠와 달랐다." 미시간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훈영 합굿(36·한국명 정훈영)은 1974년 인천에서 태어나 2살 때 미국에 입양됐다. - 어렸을 때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부모와 생김새가 너무 달라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어렸을 때 미국 아이들이 놀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것으로 놀렸을 것이다. 모든 것을 충분하게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 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은 언제인가. "깊이 생각한 것은 대학교(미시간대)에 가서다.한인 학생회도 있고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2006년 결혼한 아내 정선화(35)와 데이트를 한국에서 했고 처가집 식구들도 만났다. 가족으로 느껴졌다. 요즘은 한국음식을 미국음식 보다 더 많이 먹는다.(웃음) 한국문화에 100% 익숙하지는 않지만 편안하다. 영어 이름이 따로 없다. 한국어 이름인 '훈영'을 쓰게 한 것에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게 나다." - 한국의 친부모는 만났나. "1998년, 2005년 한국에 갔었다. 하지만 서류가 남아있지 않았다." 훈영 합굿은 대학 졸업 후 최대 노조연합체인 산별노조연맹(AFL-CIO)에서 근무했다. 이후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다 2002년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간주 주 하원의원에 당선, 3선을 기록했다. 3번 이후 연임을 규제하는 미시간 주법에 따라 이번 선거에는 주 상원에 출마했다. - 어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됐나. "나를 입양한 양아버지는 미시간 교사연맹 회장으로 지역 정치인이었다. 어려서 아버지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랐다. 내게는 정치인의 피가 흐른다." - 본인 지역구의 특징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남부지역이다. 자동차 산업침체로 경기가 수년간 안좋았고 최근 2~3년 간은 주택차압이 크게 늘었다. 선거기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지역의 큰 이슈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걱정했다. 오히려 현대자동차 R&D센터가 들어서고 LG캐미칼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미시간에 세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 - 아시아계 정치인에 대한 편견은 없었나. "전국에서 더 많은 아시아계 정치인들이 선택되고 있다. 이름이나 생긴 것은 중요하지 않다. 유권자들과 얘기하면서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선거기간 힘들었던 점은.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미시간 주 하원의원은 2개 도시, 9000명의 유권자를 상대한다. 하지만 주 상원의원 지역구는 10개 도시 27만명이다. 이들에게 나를 알려야 했다. 각종 미팅에 참석가게 문을 두드리며 유권자들을 만났다. 선거때마다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직접 많이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유권자들을 많이 만났다." - 앞으로의 꿈은. "미시간 주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힘쓰려고 한다. 미래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지금 나의 위치를 행복하게 생각한다. 야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핵심가치는 간직하지만 실용적 정치를 펼칠 필요가 있다." ■BJ박 조지아 주 하원의원 지역구 백인 많지만 '편견' 넘어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얘기" 보수색이 강한 조지아주에서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BJ박(37)은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이민 온 1.5세다. - 어렸을 때 미국에 이민와 힘든 점은 없었나.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도 많지 않았다. 2500명 고등학생중 아시아계는 4명 뿐 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서 경찰이셨다. 미국에선 식료품 가게 직원으로 열심히 일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이 미국 사회를 잘 몰랐기 때문에 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야 했다. 진로를 설계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힘들 때 'Can you help me?'(도와줄 수 있느냐)라고 편하게 물을 수 있는 멘토(Mentor)를 찾기 힘들었다. 다른 한인 2세를 위해 서는 내가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로스쿨(일리노이대)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0년 9·11테러가 터졌다. 사회에 봉사하고 싶었다. 연방검사로 그 이후엔 정치인으로 진로를 튼 이유다." - 본인 지역구의 특징은. "백인 중심이다. 4만5000명의 유권자중에 한인은 40명 정도. 아시아계도 많지 않다. 아시안 아메리칸이 백인 지역구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편견을 넘어서는 데 이번 선거의 승리가 도움이 될 것이다." - 아시아계 정치인에 대한 편견은 없었나.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인 조지아에서 출마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전혀없다. 인종이라는 '한계'는 자신이 세우는 것이다. 실제는 있지 않다. 지역구 유권자중 나이 드신 분들은 나를 '오리엔탈'(아시아계의 경멸적 표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종차별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잘못이라는 걸 몰라서 그럴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앞마당에 나른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PAK'(박)이라는 사인판을 세워 놓았다." - 선거운동은 어떻게 했나. "간단하다. 많은 사람과 직접 만나 얘기했다. 아내 산드라(한국명 신혜정)와 함께 평일에는 새벽 5시30분 부터 오후9시 까지 지역구를 훑었다.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 'BJ'는 친절하다'는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 선거운동중 힘들었던 점은. 어려움은 어떻게 이겨냈나. "나는 공화당 후보다. 공화당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한인들이 비판을 해왔다. 정치인은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 질문자 중에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다가서는 경우도 있다. 해법을 찾으려 했다." - 실패를 생각해 본 적 있나. "낙선을 생각해 봤다. 상대는 굉장히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선거기간 새로운 이웃들과 만난 것은 결과에 관계없이 뜻깊은 경험이었다." - 앞으로의 꿈은. "지금에 충실하는 것이다. 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됐으니 주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 한다. 딸에게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다. 김기정 기자 kijungkim@koreadaily.com

2010-11-14

[파워 업 코리안-3·끝] 격량의 중간선거…무엇을 남겼나

지난 2006년 15명의 정치인을 배출한 데 이어 올해에도 사상 최다인 17명의 한인이 미 정계 진출에 성공하면서 미 정계에서 활동하는 한인 정치인 규모도 6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또 다른 집결이 필요하다. 우선 당선된 한인 정치인들이 지역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한인 커뮤니티의 지원이 절실하다. 미셸 박 스틸 3지구 조세형평위원과 강석희 어바인 시장 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 등 재선에 성공한 한인 정치인들의 경우 임기동안 지역을 위해 펼친 정치활동을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아 높은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다. 미주한인민주당총회(KADNO) 브래드 이 회장은 "이번에 당선된 한인 정치인이 재선에 성공하고 또 다른 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역 커뮤니티의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이들이 진출한 분야에서 자리잡고 성공할 수 있도록 한인 커뮤니티가 꾸준히 지원해야 정치력도 함께 신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차세대 정치인 배출도 시급한 과제다. 이번에 당선된 한인 정치인 17명 중 상당수는 1세대로 꼽힌다. 한인 정치인들이 늘어나려면 이제는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할 수 있는 2~3세 정치인들을 발굴해야 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미연합회 LA지부의 그레이스 유 사무국장은 "하와이를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는 한인 3~4세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정치력이 성장하려면 차세대 대표를 찾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인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면서 변한 게 있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의 정치 참여를 말리지 않는 것"이라며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부모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투표 참여의 중요성도 한인 정치력 성장에 빠질 수 없는 요인이다. 한미민주당협회의 알렉스 차 회장은 "투표율이 높으면 한인 커뮤니티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정치인의 관심이 쏠리면 당연히 2~3세들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이어 "정치인 후원금을 걷어주는 시대에서 이제는 정치인에게 한인 커뮤니티의 이슈를 듣고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연화 기자

2010-11-05

[파워 업 코리안-2] 격량의 중간선거…무엇을 남겼나

이번 중간선거는 미 전역에서 한인 정치인 17명을 배출하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이민 관련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하원 민주당은 그동안 소셜시큐리티 카드에 신원조회 정보를 삽입하고 임시 노동자들의 신원조회 시스템을 설치해 국경을 통한 밀입국 단속을 강화하는 대신 미국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에게 합법적인 체류신분을 부여하는 내용의 구제안을 추진해왔었다. 그러나 연방 하원 다수당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뀐 만큼 구제안 추진도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의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미 공화당은 미국내 1100만명에 달하는 불체자를 구제하는 안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상원도 비슷한 실정이다. 민주당이 다수당석은 지켰지만 5석이나 공화당에 뺏긴 만큼 법안 추진을 둔 양당의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재선을 치른 네바다 주 대표인 해리 리드 연방상원 원내대표의 경우 "당선되면 불체자 자녀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신분을 부여하는 드림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뒤 라틴계 유권자들의 몰표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실제로 공약을 지킬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같은 의회의 분위기는 결국 미국에 반이민 정서를 확산시켜 각종 단속과 추방도 이어질 전망이다. 또 공화당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사용한 구제안을 중단하고 예산 삭감을 대폭 추진할 경우 저소득층 이민자 가정들의 생활도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및 의료 혜택을 크게 줄일 경우 가뜩이나 높은 한인 무보험자 비율도 늘어나 한인 커뮤니티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갖게 됐다. 반면 로컬 정치의 경우 한인을 비롯한 이민자 커뮤니티를 찾는 정치인들의 발길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 라틴계와 한인 등 이민자 투표가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버라 박서 연방상원의원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 민주당 후보와 멕 휘트먼 공화당 후보 데이브 존스 가주 보험국장 후보 등은 선거를 앞두고 한인타운을 직접 찾아와 지원을 요청했을 정도로 한인 유권자의 힘을 인정하고 있다. 전국리서치협회에 따르면 이번 가주 선거에 참여한 아시안 유권자의 55%가 민주당을 지지해 가주가 다시 민주당 세력을 되찾는데 일조했음을 드러냈다. 장연화 기자

2010-11-04

[파워 업 코리안-1] 경륜 쌓이고 젊어지고…한인 정치력 전국 뻗는다

11.2 미국 중간선거는 미국 정치의 지형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지만 한인 정치력에도 큰 전기를 가져왔다. 사상 최다 출마와 당선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뒀다. 이번 선거가 한인사회에 미친 영향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 2일 치러진 중간선거에는 한인사회에서 29명이 출마 17명이 당선됐다. 출마자 당선자 모두 사상최대 수준이다. 이번 중간선거는 변하고 있는 한인사회의 정치환경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선 한인 정치 지망생들의 수가 크게 늘었다. 미셸 박 조세형평위원 강석희 어바인 시장 등 한인 1세 뿐 아니라 정치를 꿈꾸는 1.5세 2세들이 대거 참여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을 위한 미래를 밝게 했다. LA 뉴욕 하와이 등 한인 밀집지역에 몰렸던 한인들의 정치무대를 중서부 남동부 까지 넓힌 것도 또 다른 변화다. 훈영 합굿이 미시간 주 상원의원 존 최가 미네소타주 램지 카운티 검사장에 당선되면서 중서부 한인사회에도 정치바람이 불었다. 남동부에는 지역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비제이 박이 조지아 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하와이에서는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주 상원의원 1명(도나 김)과 주 하원의원 2명(실비아 장 루크 샤론 하)이 당선됐다. 3명 모두 여성이다. 이들을 비롯해 8명의 한인 여성정치인들이 중간선거에서 당선돼 '여풍당당'의 위력을 보여줬다. 풀뿌리 선거운동 문화가 확산되면서 각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활발한 유권자운동이 펼쳐졌다. LA에서는 민족학교 한미연합회 한미민주당협회 뉴욕은 민권센터 한인유권자센터 조지아 한인유권자센터 서부플로리다 한인 유권자위원회 메릴랜드 상록회 등이 한인들의 선거참여를 유도했다. 제인 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당선자 등 한인 후보자들도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3종세트를 적극 이용해 저인망식 밑바닥 표심잡기에 공을 들였다.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이사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 선거운동의 효과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렌지카운티가 한인 정치1번지로 부각된 것도 새롭다. 부에나파크 시의원에 밀러 오 라팔마 시의원에는 스티브 황보가 당선됐고 지역 정치활동위원회(PAC)가 등장해 특정 후보군을 공동으로 지지하는 선거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폴 신 워싱턴 주 상원의원은 4선 메리 정 하야시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3선에 성공해 한인 후배 정치인들을 위한 모델로 자리잡았다. 정가의 거물들도 한인사회를 찾았다. 뉴욕에서는 민주당 개리 애커먼 의원과 공화당 제임스 밀라노 후보가 한인 커뮤니티를 상대로 토론회를 펼쳤고 스티브 로스맨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FTA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가든그로브에서 베트남계 밴 트랜 후보와 접전을 펼친 로레타 산체스 의원도 선거 마지막 순간까지 한인 커뮤니티 리더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각 지역에서 차세대 한인 정치인들을 체계적으로 배출하고 연방 정치인으로 양성할 수 있는 전국조직의 부재는 한인사회가 안고 가야 할 과제로 남았다. USC의 이제훈 교수는 "친이스라엘계 정치단체인 AIPAC과 같은 전국 네트워크를 한인사회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정 기자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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